"사람들을 돕고 싶어"...대한민국 3대 대통령들이 직업 선택한 충격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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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3대 해결사라고 불리는 오은영 박사,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는 각자의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가진 리더들 입니다.

이들이 육아 대통령, 요식업 대통령, 개통령으로 불리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엄빠들의 대통령, 오은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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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박사는 방송을 통해 32주 미숙아(1.9kg)로 태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어릴 때부터 눈이 크고 욕심이 많았으며 항상 우는 까다로운 아이였다고 하는데요. 편식과 말 대꾸는 기본이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적 오은영을 혼내거나 다그치기보다 너의 생각이 옳다며 부드럽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줬다고 합니다. 오은영의 현재 상냥한 이미지는 모두 아버지의 양육방식에 의한 영향으로 보입니다.

오은영 박사는 어릴 때부터 학업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지만 공부를 잘했다. 가정형편도 아주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평탄했다"라며 겸손한 태도로 자신의 어린시절을 설명했습니다.

 

의사가 된 특별한 계기

오은영 박사는 정신과 전문의로 현재 30년 이상 경력의 의사 입니다. 그녀가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습니다.

KBS TV2 '옥탑방의 문제아들'

오은영 박사가 중학교 1학년이던 당시, 아버지가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암은 죽는 병'으로 인식되던 시기였습니다. 아버지는 6살 터울인 자신의 오빠와 오 박사에게 통장을 내밀며 "대학 등록금까지는 무리 없을 것"이라며 유언까지 남겼다고 전했습니다.

이때 오 박사는 신에게 "아버지 건강만 되찾아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게요. 그래서 힘들고 아프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라고 빌었습니다.

KBS TV2 '옥탑방의 문제아들'

그 이후 그녀의 기도가 통했는지 오 박사의 아버지는 다행히 위암 초기였던 덕분에 수술 후 회복이 잘 되었고 오 박사는 실제로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오은영 박사는 연세대 의대에 진학한 후 "몸이 아픈 사람보다는 마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정신과를 선택했고 현재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다가 시한부 판정 받기도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특히 오 박사는 2005년에 방영해 10년 동안 이어온 육아교양프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통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방송 초반만 하더라도 '사랑의 매'라는 말이 익숙하던 것과 달리 오 박사가 꾸준히 "아이를 혼내고 때리는 것은 훈육이 아니다"라고 전파한 덕분에 '훈육'의 의미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반면 육아 멘토로 명성이 높지만, 정작 본인은 육아에서 많은 고충을 겪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 박사의 아들은 시간이 지난 후 "엄마, 사실 나는 '우리아이가달라졌어요'를 안 봤어요. 내 옆에 있어야 되는 내 엄마가 왜 저 집에 가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요"라고 말할 정도로 바쁜 스케줄로 인해 아들 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주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습니다.

SBS '막강해짐'

또한 그 시기에 오 박사에게 찾아온 위기는 건강 문제였습니다. 2008년 오 박사는 담낭과 대장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했고 담당의에게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시한부"라는 말을 듣고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마취 직전까지 오 박사는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떠올리며 '좀 더 놀아줄걸'하는 후회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다행히 담낭의 종양은 암이 아니었고 대장암은 초기였던 덕분에 수술 단 4일 만에 진료실에 복귀했습니다.

한 방송에서 당시 상황을 전한 오은영 박사는아픈 몸을 이끌고도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무리해서 복귀했지만 환자들의 재촉하는 말에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정신과 의사가 된 이래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선생님, 이거 해주세요", "우리 애는 왜 안 낫나요"하는 말을 듣고 '아, 내가 이래서 암에 걸렸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무너뜨린 건 병원에 다니던 아이의 엄마가 내민 반찬 통, 깻잎무침부터 장조림까지 6개 통을 가득 채운 밑반찬을 들고 온 보호자는 "원장님, 너무 바빠서 식사를 잘 못 챙기더라고요. 밥 꼭 챙겨드세요"라고 말했고 이에 오 박사는 눈물을 왈칵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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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면서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마음을 위로받기도 한다는 오 박사는 이후에도 밤 10시 넘도록 환자를 보는 열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쇄도하는 무료특강 요청에 응하고 방송을 통해 전국 엄마,아빠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한편,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진료실로 돌아가는 오은영 박사 입니다.

 

날 때부터 사업가, 요식업 대통령 백종원

오은영 박사와 동갑내기이면서 카리스마로는 오 박사 못지않은 또 한 명의 리더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입니다.

조선일보

학창 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다는 백 대표는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 친구 형이 하는 중고차 장사를 따라다니며 소위 '삐끼'로 사업의 첫 경험을 했습니다. 자타공인 타고난 사업가 백 대표는 차에 대한 정보를 외워 일을 시작한 지 단 40분 만에 첫차를 팔았고 이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6대의 차를 계약시켰습니다.

이후 충남교육감 출신인 아버지의 반대로 사업가의 꿈을 접고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백 대표는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남다른 사업가 기질을 드러냈습니다.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난 당시 상황을 이용해서 가게 주변 아파트에 전단지를 직접 돌린 것인데, 200장 전단을 만들어 돌리지 마자 주문은 폭주했습니다. 마침 건강 상 이유로 치킨집 사장님이 가게를 내놓으면서 해당 가게를 인수해 직접 운영한 백 대표는 대학 3학년 때까지 3개 가게를 운영하면서 15억 원의 자산을 형성했지요.

 

군입대 후 요식사업까지

하지만 백 대표는 대학시절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가 자산을 탕진했다고 밝혔습니다. 백 대표는 당시 장사를 못마땅해 하시는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려 군에 입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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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병장교로 입대한 백 대표가 간부식당의 취사 담당으로 보직을 변경한 것은 꽤 유명한 일화입니다. 백 대표는 비가 오는 날 배추를 저가에 대량 구매해서 염장해서 식재료비를 아끼는 등의 방법으로 급식의 질을 높였고 스스로도 요리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만 당시만 해도 음식장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터라 제대 후 백 대표는 요식업이 아닌 건설자재 무역업을 시작으로 본격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동시에 운영 중이던 무역회사 근처에 쌈밥집을 열어 부업으로 운영했는데, IMF로 인해 백 대표가 주력으로 삼던 목조주택 사업은 망했고 이후 백 대표는 쌈밥집을 통해 사업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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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4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쌈밥집을 흑자로 돌린 백 대표는 연이어 내놓은 한신포차가 대박을 치면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백 대표는 자신의 이름 석자가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사회적 리더가 되었습니다.

 

강형욱, 애견 훈련사에서 '개통령'이 되기까지

S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S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오은영 박사가 전국 엄마아빠들의 대통령이라면, 대한민국 개엄마들의 대통령은 강형욱 보듬컴퍼니 대표입니다.

66년생인 오 박사와 무려 19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전혀 밀리지 않는 강 대표의 카리스마는 자기분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으로부터 나오는 듯합니다. 강 대표가 중학교 시절 일찍이 반려견 훈련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강 대표의 아버지는 개농장을 운영했고 당시 일반적인 개농장들과 마찬가지로 개들이 지내는 환경은 열악했습니다. 케이지를 3~4층으로 쌓아두고 배설물이 매일 넘치는 상황에서 강형욱은 시키지도 않은 청소를 매일 했지요. 또 아버지 몰래 개들을 산책시키다가 혼났고, 초등학생 때부터 유기견 보호소에 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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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대해 강 대표는 "우리 아버지는 사실 장삿속도 모르고 너무 바보같이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서 "강아지를 잘못 입양 보내면 혼자 소주를 연거푸 들이켜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기억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강 대표는 반려견에 대한 인식과 환경의 변화를 꿈꾸면서 반려견 훈련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실제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사설훈련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훈련사 교육을 받기 시작한 강 대표는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반려견 훈련사로 일했습니다

다만 당시 강 대표가 찾다간 훈련소는 압박 훈련을 가르치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강 대표 역시 국내의 시스템을 따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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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국내의 압박 훈련을 벗어나 해외로 눈을 돌린 강 대표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500만 원을 들고 노르웨이의 '안네 릴 크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안네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꿈꿔오던 반려견 교육방식을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1년 6개월 동안 긍정훈련법을 배운 강 대표는 국내로 돌아와서 "개를 안 짖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왜 짖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보듬컴퍼니
보듬컴퍼니

특히 2015년부터 출연한 반려견교육프로 '세상에나쁜개는없다'를 통해 반려견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고 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일명 '개통령'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강아지똥을 먹은 적도 있다"라고 고백한 강 대표는 현재 반려견행동교육기관 '보듬컴퍼니'의 대표이자 반려견행동전문가로 활약하면서 우리나라의 반려견 문화 전반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접한 네티즌들은 "대한민국 3대 해결사답다", "오은영 박사님이 의사가 된 건 신의 한 수", "이 분들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오랜 시간 방송경력에도 불구하고 논란 하나 없는게 정말 대단"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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