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러 갔었는데"...자산만 8300억 사업가 살렸다는 '이것'의 충격적인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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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업가', '업계의 대부', '인생 스토리 끝판왕'. 이 모든 수식어는 백종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식업으로 성공을 시작한 이후 기업인, 교육자, 방송인, 유튜버 등 손대는 사업마다 모두 대성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백종원은 다변한 인생 스토리로도 유명한데, 성공의 아이콘인 백종원은 한때 선택한 사업이 잘 안 되어 17억원의 빚을 떠안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 선택을 통해 죽으러 갔을 정도로 인생의 굴곡을 겪은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새로운 '이것'을 찾아 8300억원의 자산을 형성하고 있는 현재에 이르렀는데, 과연 백종원의 인생을 뒤흔든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놀라운 사업 수완... "대학교 3학년, 자산 15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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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생 올해 나이 58세인 백종원은 학창시절부터 사업가가 꿈이었습니다. 그만큼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돈 버는 데 관심이 많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친구 형을 따라 중고차 장사를 시도할 정도였습니다.

이후 백종원은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재학 중 서울 압구정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는 한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포장 배달이 갓 생겨난 당시 상황을 이용해 전단지 홍보를 계획했는데, 실제로 백종원은 전단지를 직접 손으로 작성해 아파트에 돌렸고 주문이 폭주했습니다.

SBS '백종원의 3대천왕'

놀라운 사업 수완을 발휘한 백종원은 알바 시작 한 달만에 해당 치킨집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3개의 가게를 운영하며 15억원의 자산을 형성했습니다.

허나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는 법일까. 생애 처음으로 큰 돈을 쥐어보게 된 백종원은 그 돈을 모두 주식에 투자했다가 잃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사를 못 마땅해 하는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려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보직 변경.. "요리·장사 터득해"

KBS '대화의희열'

백종원 인생의 터닝 포인트 중 한 번은 군에서 찾아왔습니다. 군에서 요리와 장사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잡는, 배움의 시기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병 장교로 입대한 백종원은 간부 식당에서 제공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자 취사 담당 선임하사와 보직을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장교가 식당을 담당한다는 것에 대해 선배 장교가 "장교가 쪽팔리게 무슨 짓이냐"라며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SBS '힐링캠프'

게다가 한 번 정해진 보직을 임의로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장군에게까지 불려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백종원은 "평시에는 간부도 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음식이 전투력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라는 말로 장군을 설득했고 결국 취사로 보직을 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백종원은 간부 식당을 배급식이 아닌 뷔페식으로 운영하는 최초의 시도를 했으며 효율적인 메뉴 구성과 식단 편성을 하는 등 꾸준한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장군이 제대를 앞둔 백종원에게 "1년만 더 하고 가라"며 농담을 할 정도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tvN '백패커'
tvN '백패커'

한편 백종원은 군 시절을 회상하며 "비가 오면 배춧값이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내리면 트럭을 몰고 시장에 나가서 배추를 싸게 대량으로 사들여 염장을 했다. 덕분에 식재료비를 아끼니까 비싼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라며 군대에서 요리와 장사의 요령을 깨우쳤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17억' 빚더미... "극단적 선택 결심"

KBS '대화의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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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전역 후 백종원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습니다. 다만 당시 백종원의 사업 아이템은 요식업이 아니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음식 장사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백종원 역시 식당 일이 사업 축에 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종원이 발을 들인 곳은 건설 분야였고, 실제로 그는 인테리어 물품과 건설자재를 들여오는 건설자재 무역업을 토대로 사업을 넓혀갔습니다. 동시에 운영 중인 회사 옆에 안정적인 수입을 위한 부업 개념으로 쌈밥집을 열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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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백종원에게 주사업은 건설업이었고, 백종원은 1990년대 건설업계의 호황에 힘입어 사업 규모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1994년 백종원은 목조주택으로 눈을 돌려 시공회사까지 차렸는데, 1996년 30살이던 백종원은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목조주택 자재 구입은 축적된 노하우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내는 일"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확장해가던 사업은 1997년 IMF를 맞아 무너졌습니다. 목조주택의 자재가 해외에서 100% 들어오는 사업이었고 IMF로 인해 미국 등에서 수입하는 목재 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유지가 힘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손해를 본 액수는 무려 17억원이었습니다. 이어 금전 뿐만 아니라 평소 아끼던 직원들의 얼굴이 바뀔 때 모멸감이 상당했던 백종원은 자존심의 상처까지 더해져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홍콩으로 떠나기도 했었습니다.

 

"빚 17억 → 자산 83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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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음을 위해 찾은 홍콩에서 백종원은 새로운 희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오른 고층 빌딩에서 수많은 식당들을 보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떠올라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을 세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백종원은 자신의 쌈밥집에서 채권자들에게 무릎을 꿇고 "나에게 남은 건 이 식당 하나인데 나누어 가져도 얼마 안 된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 빚을 꼭 갚겠다"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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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하루 4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쌈밥집은 흑자로 돌아섰고, 더불어 '한신포차'가 대박을 내면서 이자를 갚을 능력이 생겼습니다. 한신포차는 백종원 자신을 역경으로 밀어넣은 IMF 상황을 고려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는데, IMF로 가벼워진 서민들의 사정을 생각해 저렴한 가격으로 어필하고 서민적이면서 친숙한 분위기를 꾸려낸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20여년 뒤 백종원은 우리가 아는 그 백종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 석자 자체가 브랜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의 유명인으로 말입니다.

백종원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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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백종원은 더본코리아의 대표로 홍콩반점, 빽다방,역전우동, 새마을식당 등 국내외 20여개 브랜드를 론칭하고 1700여개의 직·가맹점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또한 그는 요리 연구가, 요식기업인, 교육자, 방송인, 유튜버 등으로 활동하며 거대한 부를 창출해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의 자산은 8300억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년 시절 꿈꾸던 건설회사 회장님은 아니지만, 실행하는 모든 사업의 대부로 꼽히는 지금의 백종원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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