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까지 파산"... 서울에서도 새 아파트 안 산다, '미분양 폭탄' 초비상

 
연합뉴스

최근 주택 시장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9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통계 집계 이래 최초로 1000건을 밑돈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파른 기준 금리 인상과 집값 고점 인식 확산으로 얼어붙은 매수 심리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2022년 9월 3일 동대구역 인근의 푸르지오 브리센트 견본주택. 지난해 12월 794가구에 대한 청약을 받았지만 1·2순위 청약에서 대거 미달돼, 현재 청약통장 없이도 계약금만 내면 원하는 아파트(동·호수 지정)를 고를 수 있는 '선착순 분양'이 한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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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시장에서 무조건 줍고 또 줍는다는 '줍줍(무순위 청약)' 물량이 대거 나왔지만, 분위기는 지난해와 딴판입니다. 여기서 만난 채모(50)씨는 "대구에 미분양이 속출하면서 집값도 급락하는 추세라 줍줍 물량을 잡은 게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분양 관계자는 "금리까지 치솟자 지금은 방문객이 90%나 줄어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대규모 미분양 발생으로 아파트 계약률이 곤두박질치자 대구에선 자금줄에 비상이 걸린 현장이 수두룩합니다. 아파트 공사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아서 한 번 공사를 시작하면 다 짓기 전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계약률이 저조하면 그만큼 돈이 돌지 않고, 건설사로선 막대한 건설비용을 홀로 감수해야 합니다.

 

미분양 1년 만에 두 배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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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에 '미분양 공포'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대구 등 일부 지방의 문제로 여겨졌던 미분양이 철옹성으로 통하던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까지 빠르게 북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거래 침체와 함께 미분양이 격증하는 지금 상황이 장기 침체의 서막이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2009년)를 떠올리게 한다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미분양은 건설사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아파트 분양을 했지만 신청자가 적어 1·2순위 청약에서 미달된 주택을 일컫습니다.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한 아파트도 미분양으로 잡힙니다.

아파트 완공까지 입주자를 못 구하면 가장 악성인 '준공 후 미분양'이 됩니다. 그만큼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라 건설사가 집값을 깎아줘도 팔리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건설사에 미분양은 애물단지나 마찬가집니다.
 

청약 불패 수도권서도 미분양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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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사태는 더는 지방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청약 불패 지역으로 여겨지던 수도권에서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8월 말 기준 서울·수도권 미분양은 5,012가구로 2019년 12월(6,202가구)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다다랐습니다. 인천은 1,222가구로 한 달 만에 미분양이 배 이상(678가구) 늘었습니다.

지난달 1·2순위 청약이 미달돼 무순위 청약(줍줍)을 진행한 단지는 34곳인데 이 중 수도권 비중(67%)이 23곳(서울 7곳·경기 10곳·인천 6곳)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물론 무순위 청약이 이례적인 건 아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달라진 경향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대규모 청약 미달로 초기계약률이 10~30% 수준에 불과한 단지가 잇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업계에선 초기계약률의 마지노선을 50~60%로 잡습니다. 이 수준은 돼야 건설사가 공사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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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선보인 천왕역 모아엘가 아파트는 최근 무순위 청약 공고를 올렸습니다. 서울에서 두 달 만에 나온 분양인 데다 중도금 40% 무이자 혜택까지 걸어 큰 관심을 끌었지만, 일반 분양한 140가구 중 계약 체결은 11가구에 그쳤습니다. 본청약에서 모집인원을 채우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당첨자들이 대거 계약을 포기한 것입니다. 

분양 관계자는 "주변 오래된 아파트 시세와 분양가가 비슷해 나름 경쟁력을 갖췄지만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미달이 난 것 같다"고 했습니다.
 

"오른 거 토해내는 조정기 돌입"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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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미분양이 정점을 찍었던 2009년(16만 가구)과 비교하면 지금의 미분양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건설업계가 바라보는 위기의식은 상당합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미분양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처럼 시장의 장기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①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 ②원자재 상승에 따른 분양가 상승 ③기존 집값 하락 등의 영향이 맞물리며 미분양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이는 5년간의 장기침체로 이어졌습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실장은 "현재 소비자들은 당장 분양받는 게 손해라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내년부터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오른 걸 토해내야 하는 조정기가 올해부터 시작됐다"며 "3년 이상의 장기침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분양 급증이 건설경기 장기침체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지방 중견업체 중심으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자금줄 막힌 중소건설사, 대부업체에 손 벌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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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시장이 꺾이면서 당장 중소·중견건설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한 분양관계자는 "중소·중견건설사들은 금융권에서 주택사업을 위한 자금대출이 사실상 거의 막혔다"며 "대부업체에 손을 벌리는 건설사가 늘면서 사실상 대부업체만 노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했습니다. 올해 7월까지 문을 닫은 건설사는 7곳에 이릅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선 사업을 중단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주택사업 구조상 그럴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위험 요인입니다. 보통 대출을 끼고 땅을 산 뒤 사업을 시작하는 터라 사업을 늦추면 그만큼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대한주택건설협회는 최근 '미분양 리스크 대응방안이 없는 건설사가 상당하다'며 국토교통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전달했습니다. 대형건설사를 회원사로 둔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도 "미분양이 심해지면 수분양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온다"며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업계에선 정부가 공언한 '270만 가구 공급' 대책도 차질이 불가피할 걸로 봅니다. 한 대형건설사 임원은 "정부 정책은 민간을 끌어들이는 건데 지금은 시행사들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대책은 규제 정상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중요한 건 거래 활성화 대책"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준공 후 미분양은 7,000여 가구 수준으로 과도하지 않아 당장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게 본다"며 "다만 시장의 우려를 잘 아는 만큼 시장 상황을 잘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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