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생겨서 어쩔 수 없이"...돌연 은퇴 선언한 톱스타 4인이 빠진 '이것'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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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아침에 정상에 올랐다가 눈 깜빡하면 사람이 사라지기도 하는 곳, 소리소문이 많은 연예계는 시대를 풍자하는 톱스타를 배출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순식간에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종적을 감추는 데엔 제각각의 이유가 있지만 오늘은 유명인의 지위를 내려두고 '미술'하는 삶을 선택한 네 명의 연예인과 그들을 둘러싼 루머와 고난, 그리고 근황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현빈 짝사랑녀"...내 이름은 김삼순,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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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현정은 스무 살이 되던 1998년 스톰의 모델로 발탁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스톰은 소지섭, 김하늘 등 톱스타를 배출한 신인배우 등용문이었고 김현정 역시 모델 활동을 바탕으로 이듬해 드라마 '광끼'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데뷔하게 됩니다.

'광끼'에서 '달래'역을 맡은 김현정은 통통 튀는 매력의 배력을 확실하게 소화했고 원빈, 최강희, 이동건, 배두나, 양동근, 김소연 등과 함께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면서 배우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후 영화 '해변으로가다'와 드라마 '사랑하세요', '한 잎의 여자' 등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경험을 쌓던 중 드라마 '빙점'에서 비련의 짝사랑녀로 등장해 완벽한 연기변신을 해냈는데요. 2005년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 현빈을 짝사랑하는 감초연기를 해내면서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YTN 뉴스, 교보문고
YTN 뉴스, 교보문고

이후에도 드라마는 물론 영화와 연극무대까지 오가며 활동을 이어갔지만 데뷔 초 단기간에 주목받은 것에 비해 흥행 면에서 성적은 아쉬운 편이었습니다. 특히 2006년부터 3년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연극 '나비'에 출연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게 되었는데요, 극에 몰입하다 보니 우울증까지 생기면서 결국 2009년 연기활동을 내려놓고 심리상담교육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상담 도중 김현정은 어린 시절 2살 터울 동생에게 양보하느라 인형을 갖고 놀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상처였다는 점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이 권유한 대로 스스로에게 토끼 인형을 하나 선물하고 이름을 '랄라'로 짓습니다. 그리고 랄라와 함께 심리치료를 하며 자신의 '내면아이'가 된 랄라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이후 2008년 김현정은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늦었다는 생각보다는 어린 시절에 꿈꿨던 화가라는 꿈을 생각하며 천천히 전진했습니다. 작은 보폭으로 성장하던 실력은 그림 일부분에 자수를 활용하는 '화주수보' 화법과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비단을 붙여 작업을 이어가는 '쌍층' 화법 등 자신만의 작업 방식까지 고안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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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업을 눈 여겨보다 높이 평가하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중국에서부터였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 총감독을 맡기도 한 베이징대 예술학과 주임교수는 "김현정의 그림은 전통,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를 허물었다"라고 극찬하기까지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기와 미술이 다를 바 없다는 김현정은 전통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독특한 화풍을 개척하여 현재는 '배우화가'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합니다. 2020년 4번째 개인전을 마친 그녀의 근황은 유튜브와 SNS를 통해 만나볼 수 있는데요, 2021년엔 영화와 명화를 다룬 예술 서적 '영화광입니다만, 그림도 좋아합니다'를 출간하는 등 여전히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술관련 콘텐츠의 진행자로 활약하기도 하는 그녀의 앞으로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90년대 섹스심볼, 강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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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강리나는 대학시절 미술재료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모델 일을 시작한 것이 연예계 활동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후 1987년 영화 '우뢰매3'에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을 시작했고 1989년 영화 '서울무지개'의 여주인공을 맡으면서 대종상 여우신인상까지 수상해 그야말로 주목받는 신인 여배우에 등극합니다.

이후 물밀듯 밀려오는 러브콜에 수많은 작품에 출연한 강리나는 이국적인 외모와 함께 섹시한 이미지가 부각되어 90년대를 대표하는 섹시스타라는 호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연예계 일을 시작한 20대의 강리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수식어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한편 그녀의 가족에게 맡겼던 매니지먼트 일은 지속적인 재정 분란으로 서로를 불신하는 불행한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가족과의 재정 문제와 원치 않은 이미지때문에 강리나는 연예계를 떠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1996년 영화 '알바트로스'를 끝으로 배우 생활을 마무리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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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물질적인 부분으로 문제를 겪으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강리나는 당시에 대해 "미술 쪽으로 숨듯이 돌아왔다"면서 "어디 갈 데가 없다. 할 줄 아는 건 그림 그렸던 것밖에 없었기 때문에"라고 회상했습니다. 배우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미술활동을 이어왔기에 가능한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을 찾아 돌아간 미술계에서도 강리나의 행보는 쉽지 않았습니다. "배우가 돈 잘 버는데 왜 괜히 나타나 남의 밥그릇을 빼앗아 가려고 그러냐"라는 말을 들으며 텃세를 겪었고 생계마저 위태로울 만큼 경제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며 대인기피증을 앓기도 했습니다. 특히 치매 걸린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자신의 건강까지 무너지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전해 듣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tvN프리한 닥터, TV조선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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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미술도 하기 싫을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해서 10년 넘게 은둔생활을 이어왔다는 그녀가 근황을 전한 것은 한 다큐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습니다. "방송이 나가면 자유를 잃는다"며 출연을 망설였지만 숨어지내던 지난 10년에 대한 아쉬움을 전하는 장면에선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은 용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배우로서의 미련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강리나는 17회에 달하는 개인전을 열면서 "배우에서 화가로 돌아온 요즘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라는 소감을 남긴 바 있습니다. 꼭 세상에 내보이지 않더라도 그녀가 그녀만의 방법으로 멋지게 삶을 칠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원조 국민 첫사랑,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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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MBC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한 심은하는 같은 해 '한지붕 세가족'으로 데뷔한 이후 2000년 영화 '인터뷰'를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7년의 짧은 활동 기간 동안 국민적 사랑을 받았습니다. 데뷔 직후인 1994년 드라마 '마지막승부'를 통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연기상을 받고 이후 드라마 'M', '여울목' 등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당시 심은하는 제과류, 의류, 화장품, 자동차 등 수많은 광고를 섭렵한 광고퀸이었는데요, 1998년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첫사랑의 아이콘이 된 한편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드라마 '청춘의 덫'에서는 완벽한 연기 변신까지 해내면서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도 거머쥐게 됩니다.

짧은 활동 기간 동안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을 휩쓴 것은 물론, 미모와 연기력, 매력까지 인정 받은 심은하는 1990년대 최고의 여배우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하지만 시대의 사랑을 받은 만큼 대중들의 관심도 높아 그녀는 늘 사생활 관련 루머에 시달려야 했는데요, 2001년엔 결혼을 예정한 연인과의 파혼 소식을 전한 후 "평범하게 살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며 돌연 은퇴합니다.

경향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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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대중으로부터 숨은 심은하는 2005년 한성실업 회장의 아들인 지상욱 교수와 결혼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정치에 입문한 남편을 도와 선거 시즌에만 카메라 앞에 서고 있는데요, 유일하게 개인적인 소식으로 근황을 전한 것은 2009년 한 전시회에 한국화 4점을 출품할 때였습니다.

당시 심은하는 연예계 활동을 중단한 후 동양화 공부에 몰두한 사실을 전하면서 결혼 전인 2004년부터 2005년에 그린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림이 유일한 탈출구"였다는 심은하는 "전시회에 낼 만한 실력이 아니라 망설였는데 시어머니가 힘을 주셔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결혼 후 두 아이의 육아에 전념하느라 붓을 놓은지 오래됐다고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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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탈출구라던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어서였을까요? 심은하는 지난 2017년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병원에 입원한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샀습니다. 실제로 심은하는 2010년에도 자신의 작품 한 점을 자선경매를 통해 내놓으려다가 남편의 선거법 위반과 관련한 이슈 때문에 회수한 적이 있는데요, 이후에는 육아 때문인지 화가로서 활동 근황도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전해진 심은하의 근황 역시 2020년 4월 남편이 출마한 총선 유세 현장에 응원을 나선 모습뿐입니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두 자녀의 엄마로서 바쁜 일상은 어쩔 수 없지만 작가 혹은 배우 심은하로서의 활동에도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아이돌로 데뷔해 비주얼 디렉터까지,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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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모델 출신의 이혜영은 1990년대 중반 여성 듀오 '코코'로 연예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후 2004년 이상민과 결혼했으나 1년 2개월 만인 2005년 협의 이혼하며 방송활동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연예인의 이혼 소식은 연예계 퇴출이나 마찬가지였고 이혜영 역시 각종 루머에 휩싸이며 잠적한 것입니다.

2011년 재력가와 하와이에서 재혼한다는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여전히 이혜영은 방송활동을 재개하지 않았는데요. 2012년에는 오히려 위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바라보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막내딸이 이혼 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투병은 이혜영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들게 했다고 합니다.

이혼 당시 절망스러운 상황을 피하기 위해 칩거하며 책만 읽었던 것과 달리 이혜영은 다시 찾아온 슬픔에 붓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 멋쟁이로 소문났던 아버지를 화폭에 담은 것이 이혜영의 첫 작품이 되었는데요, 이혜영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면서 지난 이혼의 상처와 아버지와의 이별 등 마음 속 고통을 그림을 통해 풀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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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영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초반, 프리다 칼로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합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림으로 풀어낸 프리다 칼로의 방식이 그녀의 마음을 울린 것일까요? 프리다 칼로 풍의 그림을 따라 하며 힐링하던 이혜영은 두 번의 개인전을 열며 어엿한 작가로 거듭납니다. 더불어 2000만 원 상당에 팔리는 자신의 그림을 소개하며 "애정을 쏟아부으면서 그림 그린 걸 봤기 때문에 남편이 못 팔게 한다"라고 은근한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세 차례나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친 이혜영은 최근 SM 이수만 회장의 부탁을 받고 아이린과 슬기의 유닛 활동과 신인그룹 에스파의 비주얼 디렉터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정통성, 전공자, 학벌 등 서류가 주는 의미가 모호해진 요즘,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끼와 재능을 펼치고 있는 아티스트 이혜영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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