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 수입과 200억 의류 사업의 명암
코스닥 상장 좌절과 유행 변화 뒤 찾아온 결단
정혜영과의 결혼 이후 시작된 기부 인생의 진실

연예계 대표 기부천사이자 1990년대를 풍미한 힙합 듀오 지누션의 멤버 션이 전성기 시절 충격적인 수입 실태와 파란만장했던 200억 원대 패션 사업 실패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수백억 원대 자산가로 여유롭게 나눔을 실천해 왔을 것이라는 세간의 편견과 달리, 톱스타 시절에도 일반 회사원 수준의 수입에 머물렀던 과거와 통장 잔고가 바닥난 상황에서도 기부를 이어왔던 반전 사연이 공개되면서 대중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지누션 수입 회사 과장급 불과"… 90년대 가요계의 정산 민낯

션은 최근 공개된 동영상 토크 콘텐츠에 출연해 지누션 활동 당시 손에 쥐었던 실질적인 수입 규모를 가감 없이 고백했습니다. 메가 히트곡 '말해줘', 'A-Yo' 등으로 가요계 정상에 올랐던 그룹이었지만, 션은 지누션 활동으로 큰돈을 만지지 못했다고 회상했습니다.
활동기와 비활동기를 모두 합산해 평균을 내보면 일반 회사 과장급 정도의 소득에 불과했다는 설명입니다. 음원 스트리밍이나 정기적인 저작권료 체계가 정착되지 않았던 90년대 가요계 환경상 방송 활동을 쉬는 기간에는 수입이 아예 발생하지 않는 취약한 수익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 가려져 있던 톱스타의 현실적인 경제 사정은 지켜보던 이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겼습니다.
연 매출 200억 패션 신화의 몰락과 코스닥 상장 좌절

가수 활동의 불안정한 수입을 극복하기 위해 션이 선택했던 돌파구는 패션 사업이었습니다. 1998년 말 힙합 의류 브랜드를 론칭한 션은 힙합 열풍에 힘입어 전국에 40개가 넘는 매장을 출점시켰고, 2001년 무렵에는 연간 매출이 무려 200억 원대에 달할 정도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시 증권가에서 코스닥 상장까지 구체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상장이 성사되었다면 개인적으로 수십억 원대의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매출 지표 이면에는 심각한 재고 부담과 막대한 재투자 비용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외형적 성장에 비해 션 본인이 실제로 가져간 수익은 거의 전무했고, 코스닥 상장마저 끝내 무산되면서 사업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컨드 브랜드를 전개하던 시기에 힙합 패션의 상징이던 통 넓은 바지 유행이 급격히 저물고 스키니진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수요가 급감했고, 결국 션은 쓰라린 폐업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션은 청년 시절 큰돈을 만졌다면 고급 외제차를 사며 방황했을지도 모른다며, 오히려 사업 실패로 큰돈을 쥐지 못했기에 인생의 중심을 지킬 수 있었다며 성숙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한편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 온라인 공간에서는 "지누션이 과장급밖에 못 벌었다고?", "매출 200억인데 빈털터리라니 사업이 정말 무섭다", "돈 벌어서 기부하는 줄 알았는데 통장 잔고 털어 나눔 실천한 거였냐", "젊을 때 큰돈 만졌으면 유혹에 빠졌을 거라는 고백이 진짜 대단하다" 등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정혜영과의 결혼과 하루 만 원으로 시작된 나눔 인생

사업 실패 후 션의 삶을 완전히 바꾼 전환점은 배우 정혜영과의 결혼이었습니다. 션은 2004년 결혼식을 올린 바로 다음 날, 아내 정혜영에게 매일 만 원씩 모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하자는 제안을 건넸고 이것이 20년 넘게 이어진 나눔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로서 처음 촬영한 동반 광고의 출연료 전액을 흔쾌히 기부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특히 집안에 여유 자금이 넉넉하거나 통장에 돈이 쌓여 있을 때만 나눈 것이 아니라, 생활비 통장이 빠듯할 때조차 기부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이후 들어오는 광고나 강연, 행사 수익으로 메워나갔다는 속사정은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울림을 안겼습니다.
하루 만 원의 약속으로 시작된 션 정혜영 부부의 누적 기부액은 현재 60억 원을 훌쩍 넘어섰습니다. 마라톤 완주와 모금 캠페인을 통해 국내 최초 루게릭 요양병원 착공을 이끌어내는 등 선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션의 진솔한 인생 역정에 누리꾼들의 따뜻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